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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 Bogor, Indonesia

보고르는 자카르타에서 지하철처럼 생긴 기차를 타고 남쪽 끝 종점까지 가면 나오는 동네인데, 내가 도착한 날에는 비가 무척이나 많이 내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말 한개도 못하는 나를 위해 이완이 자카르타 기차역까지 데려가 차표도 끊어주고 또 플랫폼을 못찾을까 불안한 눈빛, 또 종점까지 절대 갈아타면 안된다는 바디랭귀지와 함께 보내 주었다. 기차에서는 인도네시아 소년들이 알파벳이 거꾸로 된 내 모자가 우스운지 가는 길 내내 눈만 마추치면 낄낄거리면 웃었다. 그리고 난 같이 웃어주었지. 어쨌던 총을 멘 경찰인지 군인인지가 두어명 탄 기차 속에서 내가 평소 그렇듯 약속시간에 한참이나 늦은 현실에 두근세근하며 한참 기다렸을 윤정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내려갔다. 보고르 역이 몇백미터 앞으로 다가오자 새카맣던 기찻길 옆으로 사람들이 뛰어내린다. 나도 따라 뛰어내려 인파를 따라갔고, 밝은 곳 기둥 아래 서 있는 윤정이를 발견했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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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ent #13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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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 Bagan, Myanmar

바간의 환전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다른나라 돈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던 조조. 사실 관광객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전형적인 수법이었지만, 우리는 모르는 척 조조에게 천원짜리를 줬고, 조조는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렇게 조조는 우리의 일일 가이드가 되었다. 조조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과 식당이 즐비한 큰길 뒤로 숨겨진 진짜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조조네 집에 가서 얼굴에 타나카도 바르고, 동네 학교에 따라가 조조네 누나도 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카메라 멘 사람들 없는 사원도 몇개나 데려가 주었다. 나는 사실 그 순수한 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거 이러다가 돈 받는거 아니야?’같은 멍청이같은 속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 때 더 맛있는 것들 많이 사 줬어야 했는데. 조조와의 하루 이후 긴 시간동안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곱씹어 보는 지금도 계속.

 

 

moment #11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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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PRC

자전거 위에서 80킬로째가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만한 갓길에 서서 오도가도 못하는 나를 런치응은 바로 다음 마을에서 날을 보내자고 다독였다. 곧 나타난 마을은, 사실 마을도 아닌 게 길 가에 가게가 몇개 있는게 전부. 자전거 끌고 들어온 남자 둘에 식당 할머니와 젊은 처자는 처음에는 놀라더니 이내 숙주나물이 들어간 계란부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차도 내어주고 물어보지도 않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가르쳐 주었다. 그 집 막내 꼬맹이가 주변을 알짱거리고 곧 이어 아들내미 둘과 딸내미 하나도 돌아왔다. 런치응에게 요 안에서 하룻밤 묶을 수 있느냐 물어보라 했더니, 사투리가 너무 심해 말이 안 통한단다. 결국 손짓발짓으로 가게 문을 닫으면 문 앞에 텐트를 치고 자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늦게 도착한 내 또래정도 되어 보이는 아빠는 우리를 참 신기해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차를 몇잔이나 마신건지. 꼬맹이들이 텐트를 보고싶다 재촉해 너무 늦기 전에 텐트를 치니 그 속으로 왔다리 갔다리 까르르.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가 다시 이들을 볼 수 있을까. 이 곳은 어디쯤이었을까. 헤어짐이 너무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moment #10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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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 NYC, USA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어디냐 묻는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뉴욕이라 말할 것이다.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곳, 별별 재미난 일들이 끊이지 않는 곳. 만약 지금 당장 뉴욕의 얇고 흐물흐물한 치즈피자를 주문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활절 기간의 세인트 패트릭스 대성당 앞의 5번가는 모자퍼레이드로 축제 분위기다. 거리엔 라이브 재즈가 흐르고 사람들은 각기 개성 넘치는 모자를 쓰고 춤을 춘다. 저 안에 뛰어 들어가고 싶다. 언젠가는 저 안에 들어가고 말리.

 

moment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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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Fuzhou, China

푸저우 릴케네 집에서 하루는 한국요리를 만들어 다같이 먹기로 했다. 나는 콜라찜닭을 만들고 싶었다. 릴케의 사촌인 왕혼싄따거는 닭고기를 사려는 나를 마트 대신 시장으로 데려갔다. 당최 무엇을 하는 곳인지 감조차 않는 곳이 있지 않던가? 이곳이 나에게는 딱 그랬다. 그곳엔 닭, 비둘기, 오리, 토끼 등을 가둔 우리들이 층층히 쌓여져 있었는데, 나는 처음에는 달걀을 파는 곳인 줄 알았다. 왕따거의 발이 이곳에 멈추더니 닭 한마리를 고르고 두어마디 흥정을 한다. 미처 상황파악이 되기도 전에 날카로운 식칼은 닭의 목을 반쯤 잘랐다. 그 닭은 덜렁거리는 목을 매단 채 플라스틱 통 안에서 미친듯 푸드덕거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불과 15분만에 털이 모두 뽑히고 날개와 다리가 해체되어 봉투에 넣어졌다. 겨우 만원이 채 안되는 돈에. 음마야.

 

moment #8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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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 Jorsale, Nepal

그를 만난 건 입산 한 지 열흘도 넘어서였다. 사흘을 쉬지 않고 하산하다 머문 조르살레의 깔끔했던 민박집에 들어 갔을 때, 그는 식당 구석에서 불경소리를 외우고 있었다. 그 특이한 모노톤의 목소리에 살짝 웃음이 나왔는데, 그의 불경 읽기는 그 후로도 몇시간이나 계속되었다. 나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길쭉한 종이에 씌여진 불경을 한장씩 넘겨가며 외는 모습을 그의 옆에 앉아 값에 비해 터무니없이 소박했던 애플파이를 씹으며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는 나를 향해 쌀을 던져 주었다. 복을 빌어 주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 안의 귀를 쫒아 내려 했던 것일까. 플로라와 퍼디난드는 그의 옷차림을 보니 티벳에서 내려온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해가 지면 그는 모든 짐을 그대로 놓을 채 그의 절로 돌아갔다. 다음날 물어보니 그는 티벳사람이 아니고 네팔사람이었다 한다.

 

moment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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