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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야 하!

뜨랏에서 방프라 가는길에 7바트짜리 기차로 갈아타겠다며
역 근처에서 하룻밤 묶었다.

하루에 한 대밖에 없는 방콕방향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투데이 트레인 캔슬이라는 역장아저씩의 말에
다시 역 근처에 숙소로 돌아가 예정에 없던 하루를 더 묶게 되었는데,

집앞에서 팟타이랑 삼각김밥이랑 마일로 사들고 돌아오는길에
예정시간보다 대여섯시간 늦은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오 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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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ent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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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ent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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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Hong Kong

홍콩에 맛있는 것이 참 많다.

나는 그 음식의 홍수 속에서 챠슈판만을 고집했다.
애매하게 날리는 하얀 밥 위에 간장에 졸인 돼지고기나 오리고기같은 것을 썰어 얹고
양배추볶음 같은 것을 곁들어 먹는데,
증말 맛있다. 맛있어서 나는 매일 먹었다.

챠슈덮밥, 챠슈국수, 챠슈빵, 챠슈볶음, 챠슈라면, 챠슈맛과자…

홍콩에서 만난 티벳친구 ‘축협’은 나와 다닌지 삼일 째 되는 날,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라는 내 물음에 “노 모어 챠슈”라 말해주었다.
왜냐하면 아침도 점심도 챠슈를 함께 먹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굳이 챠슈를 먹었다 왜냐하면 맛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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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 Bang Phra, Chonburi, Thailand

방프라에 있는 학교에서는 일주일을 있었는데, 그 중 나흘이 소풍이었다. 나는 일개 봉사자로 돈 한 푼 안들이고 파타야 외곽의 민속촌이라던가, 촌부리의 원숭이 사원 등을 아이들과 함께 놀러다녔다. 그 중에서도 나를 잘 따르던 아이가 있었다. 요 녀석은 자신이 태국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의 부모님이 중국에서 넘어온 가족이란다. 다른 애들보다는 조금 더 통통하고 유치한 면이 없잖아 어쩐지 조금은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 특별히 신경 써 주는 내가 좋았능가보다. 사실 그 학교에서는 나 또한 적응을 하기 쉽지 않아서 마지막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인사도 소홀히 하고 도망치듯 나왔는데, 그런 나를 교문 앞 까지 쫒아와 엄마가 주랬다며 태국 디저트와 이메일이 적힌 쪽지를 건네주었다. 이 기억이 일주일간의 시간 중 가장 가슴이 따듯해진 순간이었다.

 

moment #14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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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 Bogor, Indonesia

보고르는 자카르타에서 지하철처럼 생긴 기차를 타고 남쪽 끝 종점까지 가면 나오는 동네인데, 내가 도착한 날에는 비가 무척이나 많이 내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말 한개도 못하는 나를 위해 이완이 자카르타 기차역까지 데려가 차표도 끊어주고 또 플랫폼을 못찾을까 불안한 눈빛, 또 종점까지 절대 갈아타면 안된다는 바디랭귀지와 함께 보내 주었다. 기차에서는 인도네시아 소년들이 알파벳이 거꾸로 된 내 모자가 우스운지 가는 길 내내 눈만 마추치면 낄낄거리면 웃었다. 그리고 난 같이 웃어주었지. 어쨌던 총을 멘 경찰인지 군인인지가 두어명 탄 기차 속에서 내가 평소 그렇듯 약속시간에 한참이나 늦은 현실에 두근세근하며 한참 기다렸을 윤정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내려갔다. 보고르 역이 몇백미터 앞으로 다가오자 새카맣던 기찻길 옆으로 사람들이 뛰어내린다. 나도 따라 뛰어내려 인파를 따라갔고, 밝은 곳 기둥 아래 서 있는 윤정이를 발견했다. 살았다!

 

moment #13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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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 Bagan, Myanmar

바간의 환전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다른나라 돈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던 조조. 사실 관광객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전형적인 수법이었지만, 우리는 모르는 척 조조에게 천원짜리를 줬고, 조조는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렇게 조조는 우리의 일일 가이드가 되었다. 조조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과 식당이 즐비한 큰길 뒤로 숨겨진 진짜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조조네 집에 가서 얼굴에 타나카도 바르고, 동네 학교에 따라가 조조네 누나도 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카메라 멘 사람들 없는 사원도 몇개나 데려가 주었다. 나는 사실 그 순수한 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거 이러다가 돈 받는거 아니야?’같은 멍청이같은 속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 때 더 맛있는 것들 많이 사 줬어야 했는데. 조조와의 하루 이후 긴 시간동안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곱씹어 보는 지금도 계속.

 

 

moment #11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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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PRC

자전거 위에서 80킬로째가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만한 갓길에 서서 오도가도 못하는 나를 런치응은 바로 다음 마을에서 날을 보내자고 다독였다. 곧 나타난 마을은, 사실 마을도 아닌 게 길 가에 가게가 몇개 있는게 전부. 자전거 끌고 들어온 남자 둘에 식당 할머니와 젊은 처자는 처음에는 놀라더니 이내 숙주나물이 들어간 계란부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차도 내어주고 물어보지도 않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가르쳐 주었다. 그 집 막내 꼬맹이가 주변을 알짱거리고 곧 이어 아들내미 둘과 딸내미 하나도 돌아왔다. 런치응에게 요 안에서 하룻밤 묶을 수 있느냐 물어보라 했더니, 사투리가 너무 심해 말이 안 통한단다. 결국 손짓발짓으로 가게 문을 닫으면 문 앞에 텐트를 치고 자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늦게 도착한 내 또래정도 되어 보이는 아빠는 우리를 참 신기해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차를 몇잔이나 마신건지. 꼬맹이들이 텐트를 보고싶다 재촉해 너무 늦기 전에 텐트를 치니 그 속으로 왔다리 갔다리 까르르.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가 다시 이들을 볼 수 있을까. 이 곳은 어디쯤이었을까. 헤어짐이 너무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moment #10

Aside